15년의 고통을 정리하며.


이번 브금은 <타블로 - Airb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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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이 글을 읽는 분들, 아니, 이 블로그를 들러주시는 분들에게 많이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되어서 많이 미안하게 되었다는 말을 하려고 한다.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이 이야기를 하기는 해야 하기는 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말았다.

...음, 정확하게는 일 관련해서, 그리고 사람 관련해서 너무 많은 스트레스나 기타 여러 고통이 최근에 한꺼번에 몰려왔고, 아니 더 정확하게는 미리 병원에 갔다면 오래전 그냥 가볍게 막았을 수도 있는 일을 너무 키워서 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긴 하지만.

뭐 암튼, 더이상 몸이 견디기 힘든 상황이 와서 오늘 오후 (드디어 주변분들의 오랜 권유에 따라) 신경정신과 의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고.... 불안장애와 우울증이 동시에 있다는 진단과 함께 일단은 1주일치 약을 받고, 치료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말을 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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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정확하게 말하면 이미 문제 자체는 17살과 18살, 그러니까 선린인터넷고 1학년때와 2학년때 발견이 되어서 학교 상담실... 그러니까 요즘은 위클래스라고 한다고 하지? 암튼 거기에서 2학년때 전문상담 받고 거기서 일단은 "큰 불은 끈" 상태이긴 했고, 다행히 이제 거기서 한 스무살의 여름까지는 무난하게 보냈던 거 같아.

문제는 스무살의 여름. 친할머니가 쓰러지시고 나서 좀 "불안"이 시작된 상태는 맞는 거 같아. 하필이면 타 학교 반수 편입에 대한 문제에 그 문제가 얹혀졌고, 광운대로 학교를 옮긴 후에도 군대 문제나 기타 여러 문제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긴 했거든.

솔직히 병원에 가야 하는 신호는 그때도 오기는 왔어. 그러나 당시는 그런 사회적 여건이 마련이 되지는 않아서 가는게 많이 조심스러운 때여서 더더욱 가지는 못했던 거 같아.
(더 큰 문제는... 솔직히 그 때 갔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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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이 병을 키운건... 미안하지만 군대 때가 맞긴 해. 뭐 더 이야기하기도 싫긴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일은 좋은데, 사람은 싫은" 그런 상태이다보니까. 자대 와서는 일병까지는 도데체 어떤 상태로 군생활을 보냈는지 모르겠고, 유격전후때 그게 크게 왔는지 몸이 안좋아졌고, 그때 또 선임들에게 한소리를 듣고 (하필이면 분기별 동기제였는데 나 위로 맞선임만 한 12명이었나? 암튼 그랬어. 12명 중에 그나마 덜 까는 선임이 2명 있었다 해도 최소 10명에게 같은 소리를 듣고 그 위의 선임들에게도 또 똑같은 소리를 듣는다 생각해봐라.) 정신적으로 반쯤 헝클어진 마당에서 상병 초까지를 그렇게 버텼을거야.

그러다가 그 다음해 유격을 준비하던 와중에 하필이면 그 지역에 초대형 사건이 터졌고 (뭐긴 뭐야 임병장 탈영사건이지) 그리고 나서 8군단 전체가 뒤집어졌을 때 아예 병사 전원 심리검사 명령 떨어지고 그러고 나서 결국 그린캠프 일주일을 갔다와버림. 그래도 나는 정말이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아마 내 인생이 거기서 끝났을 수도 있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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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전역을 하고 돌아와서 고속터미널 144번 정류장에 서서.... 한 몇분을 멍때렸는지 기억은 안난다. 아니, 그냥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나. 혹은 그날이 12월 31일이었으니 2014년의 마지막날의 그 분위기에 취해있던 거였을까. 그런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가서 딱 몇시간도 안되어 친할머니의 위독을 접했다. 그러고 그 다음날 소천하셨다.

할머니의 장례까지는 굉장히 뭔가 멍한 2주였는데 (삼우제 기간까지 포함해서) 그 이후의 불안은 놀랍게도 후폭풍을 이자쳐서 나에게 영수증을 내밀듯이 찾아오더라. 2015년도 역시 위기였다. 정말 그때는 죽을 심산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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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이제 대학교를 끝내기 전까지 짝사랑만 6번을 하고 다 말아먹었다. 그건 뭐 불안장애 증상까지 유발할 정도는 아니었다만, 그래도 나 자신에게 굉장히 하마평을 많이 하긴 했던 때기도 하다.

뭐 암튼.... 2017년 졸업을 했고, 그래도 뉴딜일자리로 인턴과 파트타임을 하는 그 기간은 뭐 크게 문제는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몸에 남아있던 불안이나 고통보다는 당장의 돈뭉치가 그 고통을 "잊게" 해주었다는 게 맞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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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0년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솔직히 이게 불안의 요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동안은 뭔가 사투는 벌이고 있긴 했지만 사투를 벌이면서 뿌듯함이 반, 그리고 내가 그래도 쓸모는 있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반. 그런데 아주 약간은, 이 사태가 안끝나면 어떻게 되지? 하는 그런 불안이 살짝 남아있는 상태이긴 했던 거 같아.

...그런데 결국 2020년 연말에 일이 터졌어. 교단은 개판이었고, 교회도 인력이 바뀌면서 내년 엔트리 문제에 있어서 오히려 나와 한주찬, 그리고 나와 승조 간에 관계가 많이 파열이 났다는 거만 확인한 연말이었고, 엔트리는 일단 이렇게 내었다가 결국 대판 싸우면서 한주찬을 엔트리에서 남겨는 놓되, 아무것도 시키지 않는 상황이 터지면서 감정의 골이 무려 5개월 이상 지속되었던 것은 맞아.

그러다가 3월에 터졌어. 장렬하게 (이상하게 2015년에도 그게 3월에 장렬하게 터지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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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암튼..... 이지경까지 오게 된 거 같아서 나도 내 자신에게 할말이 없다는 말 밖에는 할 수는 없을 거 같아. 그만큼 많이 박살이 나있었던 건 맞구나...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라는 물음이 좀 짙게, 짙게 남는 거 같아서 지금 생각은 좀 멍하기도 하고 그래.

뭐 암튼... 일단은 한달, 길게는 그 이상도 치료는 불가피 할 거 같은데

당장에 일들은 쌓여 있긴 해서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나 버겁긴 해.

어떻게 해야 하는걸까?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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