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이 블로그에서 마지막 글이 하필이면 작년 연말에 써진 마당이라, 새로운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좀 가득했는데, 할 수는 있을 거 같다.
브금이나 깔겠다. 그런데 뭔 브금으로 깔아야 하지...
이번 브금은 <Yung Bae - Welcome to the Di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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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포스트는 솔직히 정말로... EH's Blog Magazine G에 걸맞는 매운맛 포스트로 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적당한 느낌으로 해야 하나 그리 큰 감은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나름 그래도 EH's Blog 네이버판보다는 형식의 자유가 크다보니 대충의 상황은 그럭저럭 네이버판 EH's Think에 요약은 되어 있지만 그냥 다시 리바이벌로 씨부려(?) 보자면
1월 - 서른 시작, 이제 20대는 끝났고 나의 인생 목표 중에 하나라는 송기영씨보다는 1년 일찍 결혼하기 (송기영씨는 결혼 당시 나이가 31세였다.) 라는 목표를 무려 75%이상 말아먹은 마당이라 거의 연애에 대한 생각은 일단 접고 당시 교회 겨울사역 일정을 세고 있다가.... 1월 24일경,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2월 - 그래도 2월 중순까지는 정상적으로 일정을 진행하며 뉴딜일자리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다가, "5개월이 남은 뉴딜은 나중에 뽑는 여름 뉴딜 (5-6개월짜리 단기 뉴딜일자리로 보통 이걸 3차 뉴딜일자리 선발이라 부른다) 에 응시하라"는 통보를 서울시로부터 받고 멘붕. 그래서 대기업 2군데 (그래봤자 CBS 세바시와 JYP 엔터테인먼트)와 중견기업 한군데의 서류를 쓰고, 대기업 2곳은 서류광탈이 되고, 중견기업 한군데도 서류는 뚫었으나, 1-2명 뽑는데 면접에만 4명이 들러붙는 초유의 상황이 일어나며 면접에서 밀리며 광탈.
그리고 면접 보기 4일 전, 코로나19 사태가 대구에서 크게 터지며, 결국 사회적 거리두기 실시, 그로 인해 교회도 비상 운영체제로 돌입.
3월 ~ 5월 중순 - 정말 교회 방송실 꼭두 새벽부터 나가면서 온라인예배 돌리고, 유치부 녹화돌림. 정말 빡셌음. 이 와중에 실업급여 받으면서 버티다가 창업과정으로 결국 선택(...)
5월 말 - 이제 슬슬 현장예배 재개를 말할 수 있을 거 같다 싶었는데, 수도권에서 난리가 나면서 다시 거리두기 및 공공기관 임시폐쇄 연장(...)
6월 - 그리고 드디어 5월 마지막주에 사업자등록증 내고 졸지에 EH Company Project를 현실로 구현함. 그리고 희망찬 미래와는 다르게, 너무 빡센 서류처리와 엄청난 매입지출이 기다리고 있었다.
7월, 그리고 드디어 일감이 들어오고 매출이 "드디어" 나오기 시작, 아주 적은 돈이지만 그래도 내년 1월에는 드디어 세금계산서 발급내역을 뗄 수 있다는 것에 설레기 시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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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몇 줄로 요약했지만 그 요약한 것들만으로도 엄청난 고난과 시련 가득...한 시간을 보냈구나로 요약하실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시현이도 군대를 가면서 (드디어 군악대 시험을 붙었다.) New Experience 관련한 것도 살짝 스탑된 거 같지만, 이젠 진짜 Prelude EP는 내 손으로 다 만들어야 한다. 정말이다. 이게 좋은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게 되었다.
원래 정확히는 연말을 기점으로 각자도생을 선언한 Team EH 였으나 지금은 어찌저찌하여 "낮은 단계의 연방제" 비스무리한(?) 상황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일단 나는 나대로 EH Company Project를 굴리고 있고, 승조는 합동교단 사무간사로 취직하여 교단의 내부 상황이 얼마나 개판(!!!)인지를 알음알음 알려주고 있으며(...) 주찬이는 뭐 그럭저럭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고, (주찬이도 상황은 나와 거진 비슷했지만 우리교회가 아닌 예전 군대때 군교회였던 육사교회쪽의 방송실을 돕고 있었다) 더 중요한건 주찬이가 연애를 (어찌저찌) 다시 하기 시작했다. (지난 마지막 글 당시에는 솔로 상태였다.)
참... 지독한 7개월이었다. 그나마 나은 것이라곤 다른 사람들은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아무 일도 하지 못하신 케이스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그래도 자잘한 일들이 들어오면서 그럭저럭 "일은"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물론 그 액수가 크진 않았지만 이런 비상 사태에 액수가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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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몇가지 슬픈 것도 있었다. 정확하게는 "몸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의 문제이기도 했는데, 프리랜서 생활이 길어지다보니 통장 액수에 큰 변화는 없었고, 당연히 그렇다보면 카메라와 노트북을 가방에 매던, 따로 캐리어백에 들고, 걸어가서 운반하는, 이른바 "뚜벅이" 생활이 지속되었다는 데 있다.
그 와중에 내 친구나 지인들 중에... 놀라지 마시라. 테슬라 오너가 속속 나오기 시작했다.
더 후회가 밀려오는 건, 이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나는 테슬라 주식이 너무 "거품이 많다" 라고 생각하고 테슬라 주식을 안샀는데....
지금 와서는 "아 18, 의현아!!! 테슬라 주식은 1주라도 샀어야지 멍청아!!!"
소리가 뇌 내에서 자동재생되어서 기분이.... 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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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쨌든 그렇게 7월도 끝나가고, 이제 내일 프로젝트 하나 하면
또 프리작업을 하고 작업비를 받긴 할 거 같다.
솔직히 코로나 블루 문제가 심각하다고 말하는 주변의 상황들 속에서도 그런 우울함이 없이 "일함으로써" 그런 걸 떨궈 낸 것은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라고 말하고싶다. 물론 그래도 빨리 이 사태가 끝났으면 좋겠다. 정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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